작가: prettyvk

원문: http://archiveofourown.org/works/1071940/chapters/2883679

등급: Explicit

커플링: 셜록/존

시점: 라이헨바흐 폭포 이후. 



Chapter 19: 6월 7-20일 - 셜록



셜록이 잠에서 깬다. 아니, 잠에서 깬 게 맞나? 머리가 무겁고, 너무 무거워서 들 수가 없다. 지금 눈꺼풀이 무거운 만큼이나. 지금 셜록의 머릿 속에는 이것 말곤 아무것도 없다: 머리카락 속으로 부드럽게 누군가의 손이 감싸쥐어져 있으며, 마치 겁에 질린 새를 안고 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받치고 있다는 것. 이 손이 누구의 손인지 알 길은 없지만, 누구의 손이었다면, 하고 바라는 사람은 있다. 그는 다시 깊은 잠으로 빠져든다. 존의 이름을 입술 끝으로 부르면서.

***


셜록은 존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깬다. 졸음이 가득한 셜록의 정신 속으로 목소리가 떠내려간다. 의미없이, 안정감을 주는 목소리, 그 리듬은 마치 심장 박동과 같이 규칙적이고, 또한 어디선가 들리는 삑삑- 울려대는 소리와 같이 규칙적이다.

조금씩 조금씩 목소리는 음절이 되고,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된다. 책. 셜록은 최소한 그 사실을 인지한다. 존은 큰 소리로 책을 읽고 있는 중이다. 미스테리 소설 같은 종류로군, 아마도.

아주 힘들게, 힘들게 애를 써서, 셜록은 눈을 뜨고, 그리고 저 쪽에는 존이 있고, 존이 앉아있다... 내 침대에? 병원 침대? 왜 내가 병원에 있는 거지?

이 질문을 큰 소리로 묻기도 전에, 그리고 존이 셜록의 눈이 잠시 떠졌다는 사실을 알아채기 전에, 그의 두 눈은 다시 감겼다.

***


셜록은 잠에서 깬다. 하지만 깨어있는 동안, 셜록은 개안[각주:1]의 고통을 느낀다. 눈을 깜박이는 것조차 힘들지만, 입과 코를 감싼 산소 공급용 마스크를 알아볼 수는 있다.

병원이군, 마침내 깨닫고, 이 사실은 삑삑대는 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운 이유와 팔 한쪽이 약간 불편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정맥 주사용 링거바늘. 그는 시야가 깨끗해지고 난 뒤에야 이것들을 보았다.

다른 쪽 팔은 아래로 내려가 있고, 잠시 동안 생각한다 - 두려워 한다 - 그는 침대에 묶인 채로 구속당한 적이 있었다. 오래 전, 불행히도 약물 복용량을 지키지 않았을 때.

하지만 아니야, 팔이 아래로 내려가 있는 건 묶어두었기 때문이 아니야. 하지만 존의 머리 무게가 약간 느껴진다. 셜록의 팔을 베고 옆으로 고개를 돌려 자고 있는 존.

셜록은 존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 그를 깨우고 싶고, 물어보고 싶고...

하지만 다시 졸음이 그에게 밀려온다.

***


셜록은 잠에서 깬다. 머리가 깨질듯 울린다. 그는 거의 술을 마시지 않는데, 술이 정신을 물러지게 하는 게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을 아주 많이 마신 다음 날 숙취가 이런 느낌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분명 술을 엄청나게 많이 마신 게 틀림없어 보인다. 사실, 그렇게 술을 마셨다는 것조차 전혀 기억이 나질 않기는 하지만.

조용하게, 깊은 신음 소리를 내면서 앉으려 애쓰지만, 몸이 너무 약해졌는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산소 마스크가 얼굴을 덮은 것을 보고, 그는 자기 집 침대 위에 누워있진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팔 한쪽에는 정맥 주사용 링거바늘이 꽂혀있다. 걱정스러운 눈빛의 두 남자들이 각각 양 옆에 서 있다.

마이크로프트는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만한 방식으로 잔뜩 구겨진 표정이다. 바깥 사람이 보기엔, 그는 완벽히 점잖아 보이는 셔츠와 조끼를 입고 있다. 하지만 조끼 옆 면은 주름져있고, 그의 셔츠는 접혀 올라가있다. 분명 24시간, 혹은 그 이상 이 옷들을 입고 있었던 모양이다. 눈 아래엔 다크서클이 짙었고, 그보다 더 오랜 시간 깨어있었음을 짐작케한다.

마이크로프트의 맞은 편에는, 뺨에는 어두운 색으로 수염이 덮힌, 마이크로프트보다 더 피곤해 보이는 존이 있다. 눈을 크게 뜨고, 그는 셜록의 손을 잡고 가볍게 쥔다.

"이봐, 셜록? 일어났어?"

셜록은 말을 하고 싶지만, 목이 너무 건조해져 아무 소리도 낼 수 없다. 느리지만 신중한 눈 깜박임을 보내자, 존은 미소짓는다.

"오, 좋아. 잘 됐어. 돌아왔구나."

"의사를 불러오마." 마이크로프트가 말한다. 하지만 셜록은 거의 알아채지 못한다.

"아파?" 존이 셜록의 손을 좀 더 세게 쥐며 다음 질문을 던진다.

셜록은 대답하기 전에 질문에 대해 생각한다. 머리가 아픈가, 그렇다. 하지만 이게 언급할 정도로 아픈가? 이건 그냥 두통일 뿐이야. 아프지 않다고 고개를 가로젓기전에, 존은 질문을 다시 던진다.

"네 머리," 존이 말한다. "여전히 아픈거야?"

그러게.. 물어봤으니 말인데... 셜록은 다시 천천히 신중한 눈 깜박임을 보낸다. 하지만 눈꺼풀을 감았다 뜨자마자, 다시 눈꺼풀이 감기려한다.

"셜록? 날 좀 봐. 나랑 있어줘. 셜록."

아무데도 안 가. 그렇게 말하고 싶다. 다시는 아무데도 안 가.

하지만 이 단어들을 뒤로 한 채, 어둠이 다시 그를 한번 더 감싼다.

***


셜록은 어둑어둑하게 불이 밝혀진 방 안에서 잠에서 깬다. 그리고 한 번에 알아챈다. 병실이군.

천장을 바라보며 인상을 쓰고, 어떻게 병원으로 오게 된 것인지 생각해내려하는 도중에, 어떤 목소리가 생각을 뚫고 들려온다.

"셜록?"

베개 위에서 존을 향해 머리를 돌리고, 그를 바라본다. 존은 조용히 끙 하는 소리를 내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다. 셜록은 존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은 쩍쩍 가라지는 무서운 소리 뿐이다.

"여기," 존이 가까운 탁자 위에 있던 물이 담긴 잔을 내밀며 말한다. "좀 마셔. 목이 좀 부드러워질거야."

존은 셜록의 등 뒤로 손을 가벼이 대고 약간 셜록의 몸을 일으켜 세워 유리잔이 입술에 닿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첫 모금을 삼킬 땐 부서진 유리조각을 삼키는 것 만큼이나 아파왔지만, 두 번째로 삼킬 때는 훨씬 훨씬 더 괜찮아진다.

존이 유리잔을 다시 받아든 뒤 셜록의 머리를 베개 위로 다시 뉘였을 때, 셜록은 다시 목소리를 내보려 노력한다.

"존"

존이 그를 향해 미소짓는다. "응, 기분은 좀 어때?"

셜록은 괜찮다고, 별 것 아니란 뜻으로 어깨를 으쓱 움직여보려 했지만, 마치 물엿이나 캐러멜에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몸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정신도 몸도 제대로 가누기조차 힘들어." 그가 중얼거린다.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존의 입술에 띄워져 있던 미소가 얇은 선으로 닫혀 사라진다. "뇌염을 앓았어. 혼수상태로 닷새나 보냈지. 우린 꽤 걱정하고 있었어."

셜록이 얼굴을 찌푸리자, 존이 덧붙인다. "그치만 넌 좋아질꺼야, 지금은. 그저 닷새간 쉰 것 뿐이고 너도 곧 집으로 갈 수 있을거야."

말하는 게 힘들어서, 셜록은 고개만 끄덕인다.

"담당 의사를 불러올께." 존이 말한다. "금방 돌아올께."

셜록은 존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눈을 감는다.

***


셜록은 자기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잠에서 깬다. 존이 저기 있다. 내 침대 바로 옆에 - 아니, 이건 내 침대가 아냐. 여기가 어ㄷ... 병원이군, 존 옆에 서 있는 저 흰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를 보아하니.

"일어났구나." 존이 걱정으로 이마에 길게 생겨버린 주름을 문지르며 말한다. 그 여자는 한 손에 펜을 들고 셜록이 있는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그러자 존은 여자를 향해 몸을 돌린다.

"기분은 어떠세요, 홈즈씨? 아픈가요? 불편한 곳은요?"

그녀가 셜록의 눈으로 빛을 비추자 그는 눈을 깜박인다.

"전혀 아프지 않아요. 내가 여기 왜 있는 겁니까?"

담당 의사가 설명한다. 그녀의 옆에서, 존은 얼굴을 찌푸리고, 그의 얼굴의 주름마다 걱정이 가득 담겨있다.

***


셜록은 잠에서 깬다. 두 명의 목소리가 잠으로 다시 빠져드는 것을 방해한다.

여러 차례 눈을 깜박이며, 여기가 병실이라는 것을, 정맥 주사용 바늘이 팔에 꽂혀 있는 것을, 존과 마이크로프트가 문 옆에 서서 조용히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들은 함께 다가와 셜록이 방금 막 쌓아놓은 질문들 중 하나를 혀 끝에서 채 꺼내기도 전에, 존은 점잖은 목소리로 묻는다. "셜록, 왜 네가 여기 있는지 알아?"

셜록은 입술을 혀로 핥는다. 입술이 말라있다; 여기에서 얼마나 오래 있었던거지?

그는 고개를 흔든다. "나... 난 잘 모르겠어."

존과 마이크로프트는 간담이 서늘해진 표정을 서로 주고 받는다.

"기억해봐." 마이크로프트가 말한다. "생각하라고. 넌 답을 알고 있어. 답을 찾아낼 수 있어."

인상을 잔뜩 쓰면서, 셜록은 열심히 생각한다. 기억들을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살펴보지만, 경험으로부터 배운 어떤 추측 이외엔 떠올릴 수가 없다.

"내가 약을 너무 많이 흡입했나?" 그가 텅 빈듯한 목소리로 묻는다. 셜록의 눈은 존을 힐끔 보는 대신, 마이크로프트를 향한다.

마이크로프트는 괴로워보인다. "너, 다시 손대기 시작한거니?"

"아뇨, 아닙니다." 존은 셜록이 대답하기도 전에 단호한 어조로 말을 꺼낸다. 셜록은 흡입한 약기운이 올라왔던 기억도 없는데, 라고 대답하려 했지만 이건 거의 아무것도 증명해주지 않는다. "셜록의 혈액 독극물 검사는 음성으로 나왔어요. 셜록, 너 정말로 모르는 게 확실해? 겨우 몇 시간 전에 네가 왜 병원에 있게 된건지 내가 말해줬잖아. 기억해봐, 제발."

셜록은 머리를 다시 흔든다. 정말로 아무 생각도 나질 않는다.

***


셜록은 병원에서 잠에서 깬다. 존이 저기 있다. 셜록의 상태보다 훨씬 더 안 좋아 보인다. 몇 마디 말을 서로 나누기도 전에, 의사가 들어온다. 동정어린 미소와 함께, 그녀는 셜록에게 2주 동안이나 병원에 있었다고 말해준다. 뇌염을 앓았었다고, 하지만 이제 전부 나았다고도 말해준다. 그의 기억에 약간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몇 가지 검사를 할 거라고 말해준다.

세 시간 뒤, 셜록은 CAT 스캔과 MRI 검사를 마쳤다. 그는 검사를 시작하기 전에 의사가 말해준 단어 세 개를 여전히 잘 기억하고 있다. 그는 머리가 아프기 전의 삶의 모든 순간들을 기억할 수 있고, 뇌염의 첫 증상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 그리고 잠에서 깨기 전까진 아무 기억이 없다.

존은, 그 모든 검사를 받는 내내 옆에 붙어있었으며, 점점 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뀌어 간다.

"안타깝지만 우린 선행성 건망증 증상들을 보고 있군요." 그들이 병실로 돌아오자 의사가 말한다. "그게 무슨 뜻이냐면-"

"나도 그게 무슨 뜻인지 압니다." 셜록이 말을 자른다. "고칠 수는 없나요?"

그녀는 아주 잠깐 깜짝 놀랐다가 금세 평정심을 되찾는다. "아직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당신에게 최근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기억하지 못한 채로 매일 매일을 보내는 것을 보면, 고칠 수 없다는 쪽에 가깝겠죠. 유감이지만 현재로써는 예후가 좋지는 않습니다. 비슷한 상태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보면 기억력이 더 좋아진 경우는 없었어요. 반복 작업들에 대해서는 몸으로 익히기도 합니다만, --"

"당신 남자친구는 요즘 바람을 피고 있군요." 셜록이 눈을 감고 누우며 말한다. 설명은 충분히 들었다.

정적이 방 안에 가득찬다. 그녀가 긴장된 목소리로 말하기 전까진. "홈즈씨, 그건 거의--"

"MRI 검사실에 있던 그 간호삽니다. 그가 당신의 남자친구죠. 최소 8개월은 됐겠던데. 다른 간호사랑 지금 바람피우고 있지만요. 빨간 머리. 뭐 그 간호사가 당신을 알 것 같지는 않아 보이지만요. 그러니 짐작컨대 그가 당신과 그 간호사 모두를 속이고 있다고 볼 수 있겠고."

날카롭게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나고, 잠시 뒤엔, "그럼 실례하겠어요."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방을 나선다. 한숨소리.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어?" 존이 부드럽게 묻는다.

"내 두뇌는 멀쩡해." 셜록이 눈을 꾹 감은 채로 말한다. "난 괜찮다고."

존은 부드러운 손동작으로 셜록의 손을 조용히 감싸쥔다.

"당연히 괜찮지. 너나 네 그 우스꽝스러운 두뇌 모두 다 괜찮아질거야. 좋아질거야, 설록."

셜록은 불안하게 숨을 들이쉰 다음 고개를 끄덕인다.

***


셜록은 병실 안의 침대에서 잠에서 깬다.

그는 혼자 있다.

왜 여기 있는지 영문을 알 도리가 없고, 병원으로 옮겨진 기억도 없다. 두통이 있었다는 건 희미하게 기억이 난다. 조금 짜증나게 만드는 정도에 불과하던 두통이 어느날 갑자기 엄청나게 두개골을 쿵쿵 두드려대던 기억. 그는 몸을 확인해 나간다. 아픈 곳도 없고, 수술 흔적도 없다. 병이 있었던 거로군, 그렇다면. 근데 무슨 병이었던거지?

답은 침대의 발 끝에 걸려있었다. 그는 진료 차트를 넘겨보면서 정보들을 읽어내려갈 수록 점점 더 얼굴을 찌푸렸다. 뇌염, 신경에 합병증 발생. 선행성 건망증으로 추측됨, 그리고나서 확진됨. 지난 주에는 어떤 종류의 발전도 없었음. 이것은 쪽지글로 쓰여있듯, 이 증세를 고칠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마침내, 셜록이 앉아있는 게 기쁘다고 느끼게 해준 네 개의 숫자가 등장했다. 왜냐하면 지금 셜록은 자기가 일어서 있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06/20

오늘의 날짜.

18일. 병원에서 총 18일을 보냈다. 거의 3주 동안이나 여기 있었지만 그 중 단 1초도 기억해낼 수 없다.

그는 어떤 남자가 걸어 들어오는 동안에도 계속 차트를 노려본다. 셜록은 구구절절 쓰여있는 자세한 사항들을 읽어 내려간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거의 알아채지 못한채로. 간호사. 30대 후반이지만 어려보이려고 애쓰는군. 최근에 오래 만난 여자친구와 헤어졌어. 다른 간호사이거나 아니면 이 병원의 의사겠지. 그 간호사가 셜록 위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셜록이 지난 18일 동안 그를 괴롭히는 언사를 했거나 행동을 했지만 셜록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셜록이 채 알아채기 전에.

18일. 거의 400시간인데. 아무것도,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니.

"이걸 읽으시면 안 되는데요." 그 간호사가 셜록의 손에서 진료 차트를 빼앗아 침대 발 끝에 다시 걸어놓는다. "그리고 반드시 누워계셔야 합니다. 오늘 오후까진 다시 기운을 소진하는 일[각주:2]이 없어야 하거든요. 그 다음에 쉬어야 하니까요."

그가 말하는 동안, 그는 셜록이 편한 자세로 비스듬히 누울 수 있도록 돕는다. 셜록의 말이나 표현에는 저항하려는 낌새가 전혀 없다. 여전히 셜록은 너무 멍한 상태라 그런 걸 할 수 없다.

"기운을 소진하면 안 된다고?" 셜록이 질문한다. "내가 퇴원하는 건가?"

"오늘 오후에요." 간호사가 반복한다. "당신 형이 3시에 차가 올 거라고 했어요. 그러니 이제 침대에 있어요. 점심 식사가 곧 올 겁니다."

그 말을 남기고, 간호사가 떠난다. 셜록은 눈을 꾹 감고 몸에 남은 모든 기운을 다 짜내서, 점차 커지는 절망감까지도 모두 다 짜내, 뭐든 기억해보려 노력한다. 지난 18일 동안 있었던 일들 중 무엇이든지.

가장 마지막 기억은, 너무 희미해서 기억해내는 게 힘들지만, 조금 걱정스러운 눈빛의 존이 시원한 손을 내밀어 뜨거운 셜록의 이마 위에 놓았던 일이다.

존은 그렇지만 여기 없다.

하지만 여기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존에게는 셜록 바깥의 삶이 있다. 직업, 가정, 친구들. 그리고 아내.

어째서 존이 여기에 와서 셜록을 집으로 데려다주겠는가. 마이크로프트는 그러겠지만 - 아니면 최소한 그의 부하들이. 그 차는 셜록을 어디로 데려갈까? 베이커 가의 집으로? 아니, 마이크로프트는 허락할리가 없다. 셜록의 상태가 좋아질 수 없는데 홀로 내버려둘리가 없다. 마이크로프트의 집으로? 이럴수가, 그건 정말 지옥같을텐데. 우리 둘 모두에게. 부모님의 집으로? 부모님은 이런 상황을 감당하실 준비가 안 되어 있으실텐데. 게다가 미리 세워두셨던 여행 계획들 중 하나를 이미 떠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요양원이겠군, 그럼. 간호사들과 상주하는 의사들과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환자들이 있는 곳. 셜록이 매일 매일 잠에서 깨게 될테지, 누군지 전혀 알아 볼 수 없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혹은 왜 여기 있는지 모른 채로 깨어나거나.

셜록은 이러다간 다시 병에 걸리겠단 확신이 들 정도로 위가 뒤틀리는 것을 느낀다.

숨을 크게 한 차례 꿀꺽 들이마신다음, 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밖으로 움직인다. 옷과 신발 한 켤레가 의자 위에 놓여있고, 분명 셜록의 퇴원을 위해 준비된 것이다. 그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병실 바깥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자켓을 탁, 하고 잡아 당겼다 놓는다. 무례한 간호사의 모습이 병실 문 몇 개를 지나 멀어지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며, 그는 다른 방향의 길로 몸을 돌리고 복도를 대담하게 성큼성큼 걷는다. 환자가 아니라 마치 방문객인 듯이. 그는 진짜 방문자의 주머니를 슬쩍 한 다음 응급실 계단 앞의 널찍한 문을 연다. 고민도 않고 왼쪽으로 걸어 층계를 올라간다. 그는 훔친 담배들 중 하나를 입술에 물고, 옥상으로 올라가기 전까지 오래 물고 있는다. 반 쯤 기름이 차 있던 싸구려 라이터로 불을 붙인 뒤, 깊게 숨을 빨아들인다음, 폐가 타오르는 것처럼 느껴지기 직전까지 숨을 참는다. 그리고 마치 머리를 내던지듯이 숨을 내뱉고, 담배연기는 따뜻한 유월의 공가 위로 떠내려간다.

그가 이 위로 올라왔던 것도 2년 전의 일이다. 멀리 왼쪽을 본다. 모리아티가 죽었던 바로 그 장소를, 그가 서서 존에게 전화를 했던 장소를 알아 볼 수 있다. 그는 죽고 싶지 않았다, 2년 전에는. 모리아티가 이기도록 내버려두기 위해선, 그에게는 여전히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었다. 답을 채 얻지 못한 너무나 많은 질문들도 있었다. 여전히 그 질문들 중 몇 개는 답을 얻지 못했지만.

그리고 그 질문들은 영원히 답을 찾을 수 없겠지, 안 그런가?

그가 기억하고 있는, 가장 최근에 했던 결심들 중에서 존에게 말해도 좋겠다고 생각한 어떤 한 가지는, 최소한 이것만은 답을 얻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게 무슨 답이 됐든지, 만약 그 답이 그들의 우정을 끝내는 결과를 불러온다 할지라도.

뇌염의 증상 중 한 가지가 결심을 뒤바꾸어 놓는다.

그는 기억한다. 뇌염에 대한 수십개쯤 되는 사항들을 기억한다. 건망증에 대해서도. 하지만 이건 모두 교과서적인 지식에 불과하다. 이런 사항들 중 어떤 것도 그가 진짜 겪었던 것은 없다.

그는 존에게 이야길 했는지조차 기억할 수 없다.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그 날, 끔찍하게도 비참한 기분이었다. 존과 이전까지 나누었던 모든 대화들 중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그 이야기를, 시작했을리가 없다. 머리가 두 쪽으로 갈라지는 것 같이 아픈 와중이었으니까.

정말 내가 그랬을까?

제자리에서 서성이며, 두 개피를 더 피운다. 마침내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안전벽에 등을 기댄 채로 지붕 위에 앉아서, 좀 더 최근의 일들을 기억해보려 애쓴다.

아무것도 없다.

그가 마인드 팰리스에서 무언가를 지울 때에는, 아니면 그가 단순히 뭔가 중요하지 않은 일을 잊어버릴 때에는, 항상 그게 거기 있었지만 이젠 없어졌다는 사실을 말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런 게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이 18일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늘도 마찬가지로 블랙홀처럼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리고 내일도. 그리고 내일 모레도. 끝나지 않는 수레바퀴처럼.

계속 해나가야 할 이유가 없어.

매일 매일 잊어버리면, 그는 더 이상 사건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실험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거울에 비춰보는 자신의 모습은 더 늙어보일테지만,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바깥으로 나서면서 유월 중순일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한겨울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얗게 눈 덮힌 런던 - 혹은 마이크로프트가 보내버릴 어느 동네에서. 그리고 그는 존에 대해 어떤 새로운 사실도 배울 수 없게 될 것이다. 다른 종류의 미소나, 그의 재미있는 과거의 짧은 이야기들이나. 그는 존의 결혼이 점차 더 나빠지고 있다는 것도 이야기해줄 수 없을 것이다. 존이 그걸 불편하지 않게 받아들이게 될지 아닐지도 알 수 없을테고, '이야기 해' 혹은 '너 혼자만 알고 있어.' 와 같은 결론으로 이끌어줄 증거들도 수집해나갈 수 없을 것이다.

어떤 발전도, 변화도 없이 그저 영원히 머물러있는 것도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식물인간 상태로 있는 것 보다 이게 더 좋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셜록은 오래 전 마이크로프트에게 만약에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어떨까 하고 말한 적이 있었다 --

"믿을 수가 없어."

셜록은 생각의 연속고리들을 끊어놓는, 몹시 화가 난 목소리를 뱉는다. 하지만 이 목소리는, 그가 너무나 잘 아는 목소리, 그를 깜짝 놀라게 만들고, 머리를 등 뒤의 병에 꽝 부딪치게 만드는 목소리다. 진지해보이지만 실은 얼빠진 듯한 눈빛으로, 눈을 깜박이며, 셜록은 존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본다. 그리고 조용히 이 말 이외에는 할 말을 찾지 못한다. "존."

"10 분이었어." 존이 머리를 흔들고, 셜록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정말로 먹을 수 있는 것을 좀 찾으려고 널 10분 동안 혼자 두었을 뿐인데 넌 곧장 모두의 눈을 피해서 사라져서는, 이 빌어먹을 옥상에 올라와 스스로 담배로 독을 퍼붓고 있군. 이 빌어먹을 10분 동안 말야, 셜록."

존은 손을 내민다. 셜록은 그것을 본다. 남아있는 담배를 벽에 문질러 없앤 다음, 존을 다시 본다. 그리고 그 손을 잡는다. 존은 셜록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다. 그의 손바닥이 축축하다; 그는 두려웠던 것이다.

"날 어떻게 찾았어?"

존은 가볍게 코웃음친다. "나 자신에게 물었지. 네가 삶의 마지막에 머물고 싶어할만한 장소가 어디일까? 그리고 그 장소부터 찾아왔어."

"난 몰랐어," 셜록이 말한다. 목이 죄여드는 느낌 때문에 거의 속삭이는 듯이 말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일어났을 땐 혼자였어. 네가 병실에 있었는 줄 몰랐고."

존의 표정이 약간 부드러워진다. "잠들었던 거야?" 그는 조용히 한숨을 쉰다. "그러니 네가 여기 왜 와 있는지 모르겠구나?"

"내 진료 차트를 읽었어. 간호사 말로는 오늘 내가 기력을 다 소진했었다는군."

존이 고개를 끄덕인다. "담당 의사가 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어해. 우리가 집에 가기 전에 말야."

세 단어들이다. 셜록의 닫힌 마음의 고리를 풀어주는 세 단어들.

우리가 집에 간다.

여전히 그에겐 수백, 수천개의 모르는 것들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괜찮아. 존이 그에게 말해줄테니까.

존이 거기 있을테니까.

존은 항상 그러지 않았던가?






* 끄앙 ㅠㅠㅠㅠㅠ 이번 편 마지막이 참 희망차고 따스한 게 좋네요. 셜록 그래도 착하다. 포기하지 않고 그래도 ㅠㅠㅠ 흐규흐규

* 왕자님이 짚어주셔서... 이번 편은 2편의 다음 시기를 설명하는 부분이네요. 짠내 ㅠㅠㅠ 나는 시기의 이야기는 역시 맘 아프지만 그래도 셜록이 병원을 나서면서 마냥 우울하고 힘들게 떠나지는 않았다는 게 위로가 됩니다 ㅎㅎ

  1. 시력이 없던 사람이 갑자기 눈을 뜨게 되면서 겪는 눈부심이나 통증 같은 걸 말해요. [본문으로]
  2. Discharged. 본래는 퇴원한다는 뜻인데, 배터리가 방전된다는 뜻도 있어서 여기서는 간호사가 이중적인 뜻을 표현하느라 쓴 것 같기도 해요. ㅎㅎ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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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음표 5nqz23c